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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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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죽고 좌익들의 흠집내기가 역시나 시작되고, 또 한편으로는 그에 반대하여 전두환을 옹호하는 보수의 논리도 만만치 않게 반격을 가하는 모양새가 어제 오늘 이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는 진영논리에만 휩쓸리지 말고 그의 공과를 냉철히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공이야 워낙에 보수 진영에서도 많이 거론하니 생략하기로 하고...

과에 대하여 큰 틀에서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우선 필자가 전두환의 과에 대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보수의 이념, 보수의 철학이 무엇인지 확립할 마지막 기회이자 절호의 기회였지만 이걸 권력에 대한 탐욕에 의해 허공으로 날려버렸다는 데에 있다.

그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유시장을 도입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세력의 경제 네트워크에 적극 편입해 들어간 것은 분명 그의 공로일 것이다.

박정희는 그의 빈농 출신이면서 유교를 좋아하는, 즉 빈농유교의 수호자를 자처한 정체성에 비춰볼 때 애초에 정치적으로 해양세력과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정체성은 결국 경제적인 정체성에도 영향을 주어 그의 말년에 한국경제가 그리 밝지 못했던 것만 보더라도 전두환은 박정희의 단점을 어느 정도 탈피하려 노력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도 딱 여기까지.

그 역시 정치적인 정체성은 박정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결국 유교를 기본으로 하는 매우 여성적인 (그것도 어차피 시대정신에 따라 결국엔 폐기될 수밖에 없는) 정치 시스템을 고수하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여전히 학교와 사회에서는 충이니 효니, 혹은 군사부일체니 하는 등의 매우 여성적인 도덕과 윤리 기준에 따른 구호가 난무했고,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 아동 등에게는 유교적 윤리와 제한이 가해지는 등의 폭력이 일상이었다.

심지어 삼청교육대에서부터 형제복지원 등의 수용소를 만들어 국민의 생명과 자유, 인권을 무참히 침략한 죄악까지 저지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겠다.

물론 당시 경제적 호황으로 흥청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으로 중심을 잡아주어 기강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정치인 스스로의 청렴함과 솔선수범,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적 예술적 교육, 건강하고 씩씩한 사회적 기풍의 조성 등으로 이뤄졌어야 할 것들이지 강제로 국민들을 두들겨 팬다고 달성될 것이 아닌 것임에도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스리려 했으니 문제가 크다 하겠다.

그리고 이것을 하지 않은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보수를 위기로 모는 사태로 이어졌으니 전두환의 가장 큰 과는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필자가 항상 주장하듯이, 한국사에서 보기 힘든 유례없는 경제 호황의 시기 정치적, 더 나아가 문화와 철학에 있어서 유교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재빨리 서구 해양문명의 뿌리인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으로 갈아탔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대중이 경제 호황이라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오히려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껴 유교에서 그 대안을 찾으려 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국가의 리더라면 뭔가 달라야 했던 것도 분명하다.

그 결과 국민들은 유교를 버리지 못하였고, 이 유교에 근거하여 민족주의의 씨가 발호하였으며, 경제성장과 유교가 합쳐지자 대단히 끔찍한 반일 민족주의라는 혼종이 탄생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하겠다.

그리고 이것은 보수의 철학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현재의 막장과 탐욕과 기회주의가 난무하는 보수를 만들었고, 국민들 역시 이 어지럽고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철학과 이념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사태 속에서 반일 민족주의에 함몰되고 우리민족끼리에 매몰되며, 부자의 것을 빼앗아 나눠 갖자는 도적떼의 논리에 현혹되는 가련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베트남 등등에서 보듯이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그 정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도 어쩌면 애초에 그러한 숙명을 지닌 채로 태어난 국가인지 모른다.

이승만부터 해양문명의 세계관을 적극 도입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대륙문명에 익숙한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쫓겨났고, 그 이후의 보수진영 대통령들은 항상 이 부분에 있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거나, 혹은 박정희처럼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유교) 사이에서 마치 고려가 외왕내제를 한 것처럼 겉으로는 해양문명인 것처럼 국제사회를 속으로는 유교 체제를 도입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그 말로가 좋지 않게 끝나고 말았다. 

해방 이후 70년이나 해양세력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한국의 사례를 보면, 아프가니스탄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의 개방 정책으로 인한 공산당 체제의 와해가 왜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전두환 시기가 진정한 해양세력으로의 변화를 추구할 마지막 기회이면서 절호의 기회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전두환은 이 중요한 기회를 대륙문명 유교가 자신의 권력 유지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해양문명의 세계관을 거부하였고, 기존의 유교적인 정치 시스템을 계속 고수하는 뼈저린 실책을 저지르고 만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으나 그 결과는 지금 보듯이 본인의 정치적 패망이요, 죽어서까지 추한 이름을 남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니 참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어리석음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겠다.

그리고 전두환의 이러한 기조는 지금까지도 보수정당의 기본적 토대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보수정당이 원하는 경제는 해양문명, 정치는 유교 대륙문명이라는 시스템은 박근혜의 탄핵으로 이제는 더이상 실현이 불가능함이 드러났고, 그에 따라 보수가 추구하려는 정치 시스템에 커다란 공백이 생긴 상태이다.

애초에 전두환이 해양문명이라는 시대정신을 거스를 때부터 내포되어 있던 문제가 근 30여년이 지나서 터지는 꼴인 것.

전두환의 과는 바로 이러한 부분이며, 따라서 그 과가 결코 작지 않고, 현재에까지도 그것이 여전히 보수정당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보수가 앞으로 되살아나려면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윤석렬이 대통령이 되느냐 못 되느냐는 매우 지엽적이고 작은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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